2014년 11월 9일 일요일

밴헤켄의 가장 완벽했던 KS 67구



한국시리즈 사상 가장 완벽한 호투가 펼쳐질 뻔했다. 주인공은 넥센 선발투수 앤디 밴헤켄(36).
11월 8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삼성과 넥센의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밴헤켄은 6회까지 단 한 타자도 1루에 내보내지 않는 놀라운 투구를 선보였다. 7회 초 삼성 선두 타자 야마이코 나바로에게 솔로 홈런을 맞을 때까지 그가 던진 67구는 역대 한국시리즈 가장 완벽한 67구였다.
4차전을 앞둔 넥센 선수단 분위기는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3차전 패배 후유증이 4차전까지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이는 기우였다. 넥센 선수들은 정규 시즌 때처럼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로 훈련을 이어갔다.
넥센 3루수 김민성은 “오히려 LG와의 플레이오프가 긴장됐지, 한국시리즈는 내가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로 긴장되거나 흥분되지 않는다”며 “다른 선수들도 차분한 상태로 시리즈를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염경엽 넥센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염 감독은 “분명 한국시리즈가 주는 부담감은 크다. 그러나 필요 이상의 긴장감은 느끼지 않고 있다”며 단호한 표정으로 “어제(7일) 패배에 따른 위축감도 없다”고 밝혔다. 염 감독은 “정규 시즌 내내 삼성전을 치르면서 ‘오늘 지면 내일은 이긴다’는 확신 같은 게 있었다”며 “4차전도 그런 기대감으로 경기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성을 비롯한 선수들 그리고 염 감독이 3차전 패배에도 차분히 4차전을 준비할 수 있던 가장 큰 배경은 역시 ‘에이스’ 밴헤켄 등판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1차전에 선발등판해 6이닝 2실점으로 승리투수가 된 밴헤켄은 이미 4차전 등판이 예고된 터였다. 3일을 쉬고 4일째 등판이라, 밴헤켄의 투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밴헤켄은 “전혀 문제가 없다. 체력도 완벽하다”고 강조했다.
올 시즌 밴헤켄은 삼성전에 무척 강했다. 삼성전에 4번 등판해 24.1이닝을 던져 2승 1패 평균자책 2.22를 기록했다. 이번 시즌 밴헤켄이 상대한 팀들 가운데 삼성전 평균자책이 가장 낮았다. 삼성 주요 타자들과의 맞대결 성적도 좋았다.
하지만, 1차전 승리투수였고, 정규 시즌에서 삼성전에 강했다고 그것이 4차전 승리를 보장하는 건 아니었다. 1차전에서 밴헤켄에게 당한 삼성은 최고의 전력분석팀을 중심으로 4차전 대비를 마친 터였다.
삼성 코치는 “1차전 밴헤켄의 포크볼에 우리 타자들이 힘겨운 승부를 펼쳤다”며 “4차전을 대비해 밴헤켄의 포크볼을 중점적으로 연구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1차전 밴헤켄은 96개의 투구수를 기록한 가운데 무려 34구를 포크볼로 던졌다. 포심패스트볼 45구 다음으로 많은 투구수였다. 위력도 뛰어나 포크볼 34구를 던지며 5개의 땅볼아웃을 유도하고, 2개의 탈삼진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날 밴헤켄은 1차전의 부담감 때문인지 1회 4타자를 상대로 23구나 던지는 많은 투구수를 기록했다. 결국 경기 초반 많은 투구수는 밴헤켄이 6회를 끝으로 마운드를 내려올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됐다.
여기다 포심패스트 구위도 평소보다 인상적이지 않았다. 3회 말 나바로에게 2점 홈런을 맞은 구종이 포크볼이었음에도 계속 포크볼 비율을 높게 유지한 것도 포심보단 그래도 포크볼이 괜찮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손혁 MBC SPORTS+ 해설위원은 “1차전 선발투수란 압박감이 강하다 보니 더 정확하게 던져야 하는 부담이 경기 초반 많은 투구수로 연결된 것 같다”며 “그나마 밴헤켄이 경험 많은 투수라, 3회 나바로에게 동점 2점 홈런을 맞고도 급격하게 흔들리지 않고, 더 침착하게 투구할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4차전이었다. 삼성은 밴헤켄 대비를 끝마친 터였다. 특히나 밴헤켄의 4차전 선발 등판은 3일을 쉬고 4일째 이뤄지는 것이었다. 자칫 컨디션이 흔들리고, 급격하게 체력이 떨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가뜩이나 밴헤켄은 36살의 노장 투수였다. 그것도 올 시즌 187이닝을 던진 KBO리그 최다이닝 소화투수였다.
염 감독은 “4차전에서 밴헤켄이 무너지면 무척 힘든 일정이 될 것”이라며 “배수진을 쳐야 한다면 바로 4차전이 그 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포크볼 대신 패스트볼로 공격적 투구를 펼치 밴헤켄
4차전 1회 초. 밴헤켄은 삼성 선두 타자 나바로와 만났다. 정규 시즌에서 밴헤켄은 나바로를 상대로 12타석 10타수 3안타 피안타율 0.300, 피OPS(출루율+장타율) 0.717를 기록했다. 한국시리즈 1차전에선 나바로에게 2점 홈런을 맞은 바 있었다. 첫 타자부터 ‘매우 껄끄러운 상대’를 만난 셈이었다.
밴헤켄은 포크볼을 던졌다가 맞았던 1차전 2점 홈런이 떠올랐는지 초구부터 4구까지 포심패스트볼만 고집했다. 결과는 2루수 뜬공 아웃. 껄끄러운 첫 타자를 가볍게 처리한 밴헤켄은 2번 박한이와의 승부에선 속구, 체인지업, 포크볼, 포크볼을 던지며 2루수 땅볼 아웃을 이끌어냈다. 3번 채태인과의 승부에서도 밴헤켄은 체인지업, 포크볼, 포크볼로 유격수 땅볼 아웃을 유도했다.
삼성의 예상대로 밴해켄은 나바로를 제외하면 특유의 주무기인 포크볼을 적극 활용했다.
박재홍 MBC SPORTS+ 해설위원은 “밴헤켄의 포크볼은 어떻게 그립을 쥐느냐에 따라 아주 크게 떨어지는 포크볼, 평균 각도로 떨어지는 포크볼, 그보다 덜 떨어지는 포크볼이 된다”며 “특히나 우타자 기준으로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휘면서 떨어지는 포크볼은 좀체 치기 어려운 공”이라고 평했다. 박 위원은 “이런 포크볼은 쳐도 땅볼, 웬만큼 잘 맞지 않으면 평범한 외야 플라이”라며 “실제로 1회 삼성 타자들이 밴헤켄의 포크볼을 공략했지만, 외야 깊숙이 가는 타구는 하나도 없었다”고 말했다.
1회 말 넥센이 2점을 내자 2회부터 밴헤켄은 전혀 투구 패턴으로 삼성 타선과 맞섰다. 2회 선두타자 4번 최형우부터 6번 이승엽과 상대할 때까지 밴헤켄은 14구를 던지는 동안 포크볼은 하나밖에 던지지 않았다. 대신 패스트볼 9구, 체인지업 4구로 타자들을 제입했다.
2회 말 넥센이 유한준의 3점 홈런으로 5대 0으로 달아나자 밴해켄은 패스트볼 위주의 공격적인 투구를 이어갔다. 3회 초 9구를 던지는 동안 커브 1개가 있었을 뿐 8구는 모두 포심이었다. 거기다 초구부터 공격적으로 투구했고, 볼카운트가 유리한 상황에서도 피하지 않고, 정면 승부를 펼쳤다.
4회 초에도 마찬가지였다. 밴헤켄은 7구로 간단히 이닝을 정리했는데 속구 위주의 투구가 빛났다. 포크볼 2개도 2스트라이크 이후 던지는 아주 낮게 떨어지는 포크볼 대신 볼카운트를 유리하게 만들 때 던지는 평균적 낙폭의 포크볼이었다. 거기다 밴헤켄은 3타자 모두에게 초구 스트라이크를 던지며 공격적 투구를 펼쳤다.
5회 초에도 밴헤켄이 이닝을 마무리하는 덴 많은 투구수가 필요하지 않았다. 포크볼 대신 패스트볼과 커브를 섞어 던지며 3타자를 가볍게 범타 처리했다.
6회 초엔 11구 가운데 커브 대신 체인지업을 4개나 던지며 역시 유리한 볼카운트에서 빠르게 타자와 승부했다.
6회까지 밴헤켄은 67구를 던지는 동안 단 한 타자도 1루로 출루시키지 않으며 퍼팩트 투구를 펼쳤다. 만약 이대로 3이닝을 더 막는다면 한국시리즈 사상 초유의 퍼팩트 게임이 달성될지 모를 일이었다.
7회 초 나바로를 선두타자로 상대한 밴헤켄은 초구부터 6구까지 패스트볼을 고집했다. 여전히 1차전 포크볼 홈런이 떠오른 듯싶었다. 그러다 결국 7구째 시속 143km 포심패스트볼을 던졌다가 공이 높게 형성되며 나바로에게 솔로 홈런을 맞고 말았다.
6회까지 진행한 퍼팩트 투구와 1차전부터 이이온 30타자 연속 범타 기록(한국시리즈 기록, 종전 배영수 24타자 연속 범타)이 한꺼번에 깨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밴헤켄은 다시 평정심을 찾고서 후속타자들을 잘 정리하며 7회를 1실점으로 끝냈다.
밴해켄은 8회부터 마운드를 한현희에게 넘겨준 뒤 벤치에서 동료들의 플레이를 응원했다. 4차전에서 넥센이 9대 3으로 승리하며 시리즈 전적을 2승 2패로 만들 수 있던 건 누가 뭐래도 밴헤켄의 호투가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기적의 67구’ 어떻게 나왔나
타자 출신의 박재홍 위원은 “포크볼에 대비했던 삼성 타자들이 2회부터 밴헤켄이 속구 위주 투구로 전략을 바꾸자 상당히 당황하지 않았나 싶다”며 “밴해켄의 공격적인 투구 패턴에 말려들면서 더 좋지 않은 타격이 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밴헤켄은 1, 7회에만 각각 4, 5개의 포크볼을 던졌을 뿐 다른 이닝에선 거의 주무기인 포크볼을 구사하지 않았다. 대신 패스트볼 비율을 높였고, 1차전 때 거의 던지지 않았던 체인지업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투수 출신의 손혁 위원은 “밴헤켄이 경기 시작 전부터 ‘오늘은 포크볼 대신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위주로 투구하자’고 계획했던 건 아닐 것”이라며 “1, 2회 넥센 타선이 터지며 팀이 5대 0으로 달아나자 ‘최대한 투구수를 절약해 7, 8회까지 던지자. 그래야 주요 불펜투수 소모를 막을 수 있다’는 계산 아래 포크볼로 타자를 유인하는 대신 패스트볼 위주의 공격적인 투구를 펼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손 위원은 “밴헤켄 정도의 베테랑 투수라면 이미 등판 전 ‘내 뒤에 불펜투수 누가누가 있구나, 오늘은 누가 못 나오겠구나’하는 예상을 하게 마련”이라며 “3차전에서 조상우, 손승락이 많은 투구수를 기록하며 4차전엔 나오기 힘들다는 걸 밴헤켄이 다 염두에 뒀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손 위원은 입을 모아 “밴헤켄의 패스트볼 구위와 제구가 원체 뛰어나 삼성 타자들이 알면서 당했다”며 “밴헤켄 스스로 자신감에 넘친 투구를 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고 강조했다.
사실 4일째 등판뿐만 아니라 1차전 등판 때 투구수 96개를 기록한 건 분명 부담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밴헤켄은 4차전에서 더 좋은 투구를 선보였다.
손 위원은 “3일 휴식, 4일째 등판으로 밴헤켄의 전체적인 공 스피드가 2, 3km 정도 떨어졌다. 확실히 몸에 힘이 들어갔던 1차전 때보다 구속은 떨어졌지만, 오히려 가볍게 가볍게 투구한 게 구위와 제구엔 더 도움이 됐다”고 설명하며 “몸에 힘을 빼고 가볍게 던진다는 마음으로 투구해야 신체의 힘을 마지막까지 공에 전달할 수 있다”고 강조한 뒤 “4차전 밴헤켄의 투구가 ‘딱’ 그랬다”고 평했다.
덧붙여 손 위원은 “투수만의 느낌이란 게 있다. 하루를 쉬고 등판해도 투수가 느끼기에 공끝이 좋을 때가 있다. 경험 많은 밴헤켄이 4차전에서 자신의 패스트볼 구위가 좋다는 걸 직감하고, 두려움없이 공격적 승부를 펼친 것 같다”며 “만약 밴헤켄 스스로 ‘4일째 등판이라 불안하다. 체력이 조금 떨어지지 않았을까. 공격보단 방어적 투구를 해볼까’하는 소극적 생각을 했다면 어제(4차전)같은 투구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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