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24일 월요일

쓸쓸히 묻힐 뻔 했던 김병지의 위대한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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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의 살아 있는 전설 김병지(전남드래곤즈)가 또 하나의 대기록을 달성했다. 김병지는 22일 광양축구전용구장에서 열린 상주상무와의 K리그 클래식 37라운드에 출전하며 리그 최고령 출전 기록을 바꿨다. 이날 선발 출전해 풀타임을 소화하며 팀의 3-1 승리를 뒷받침한 김병지는 만 44세 7개월 14일에 출전을 기록했다. 이는 신의손(귀화 전 사리체프) 현 부산아이파크 골키퍼 코치가 2004년 FC서울에서 기록했던 종전의 기록 만 44세 7개월 9일을 넘어선 것이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고 이틀이 지난 현재까지 김병지의 기록 경신에 대한 보도는 어디에서도 나오고 있지 않다. K리그의 역사에 새롭게 남게 될 대기록이 묻혀버릴 뻔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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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령 출전’ 김병지, 마지막 기록의 봉우리를 넘다김병지는 K리그에서 기록에 관한 한 경지에 올라 있다. 지난 1992년 울산현대에서 데뷔를 한 이래 23년째 프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그는 2006년 신태용이 보유하고 있던 K리그 최다 출전 기록(401경기)을 깬 뒤 매 경기 스스로 기록(현재 678경기)을 경신하고 있다. 최다 무실점 경기, 최다 무교체 출전 등의 기록에다 골키퍼 최초 필드골, 올스타전 최다 연속 출장 등 이벤트와 관련된 기록까지도 모두 그의 차지다. 엘리트코스를 밟지 못한 김병지는 고교 졸업 후 경남 창원의 일반 기업체에서 동호인 활동을 하던 중 각고의 노력으로 상무에 입대했고 그 뒤 프로에 진출해 국가대표 주전 골키퍼까지 올라섰다. 그야말로 인간 승리의 스토리였다.

그런 김병지에게 남아 있던 유일한 기록은 최고령 출전 기록이었다. 90년대 초 사리체프라는 이름으로 한국 축구에 등장, 골키퍼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신의손이 2004년 기록한 최고령 출전 기록은 김병지조차도 깰 수 없을 것으로 보여졌다. 신의손이 기록을 달성할 당시 김병지는 이미 만 34세였다. 10년을 더 선수 생활을 해야 넘을 수 있었던 기록이었다. 당시에는 모두가 불가능할 것으로 봤지만 그는 철저한 자기 관리와 2007년 허리 부상의 위기를 딛고서 결국 유일하게 남았던 기록의 봉우리까지 넘어섰다.
김병지는 24일 <킥오프>와의 전화인터뷰에서 “기록을 위해서 선수 생활을 한 것은 아니다. 목표치였지만 한계치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끝이 아닌 하나의 시작이고 또 다른 목표가 나를 기다린다”며 대기록을 달성한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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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챙기지 않은 대기록, K리그의 슬픈 현실하지만 이 기록을 달성할 당시 그것을 인지하고 있었던 것은 오직 김병지 본인 뿐이었다. 그가 상주전에 선발 출전하게 되는 것이 확정되고, 경기가 끝나고, 이틀이 지난 시점까지도 그가 최고령 출전 기록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알린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언론은 물론 그의 소속팀인 전남 구단과 K리그를 관장하는 프로축구연맹조차도 전혀 신경을 쓰지 못했다. 비록 1실점을 했지만 팀의 승리를 지켜낸 그는 어떤 인터뷰 요청도 받지 못한 채 이틀을 보냈다. 대기록을 달성한 것을 알아주길 바라며 세상을 향해 스스로가 외치기에는 겸연쩍을 수 밖에 없었다. 본인이 입을 닫고 침묵하자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프로스포츠에서 기록은 최고의 마케팅 도구이며 홍보 수단이다. 프로야구의 경우 선수 개인은 물론 팀 기록 등에 있어서 경신 여부가 성적과 관계 없이 연일 화제가 된다. 과거 이승엽의 최다 홈런 기록과 이대호의 연속 홈런 기록이 그랬다. 올 시즌에는 서건창의 최다 안타 기록 도전이 시즌 막판의 주요 화제거리였다. 기록 경신 여부에 관심을 갖고 그에 따른 보도가 쏟아지면 팬들의 흥미는 높아진다. 자연스럽게 리그의 새로운 흥행을 주도할 수 있다.
김병지의 기록은 지금까지 기록들 그 이상의 값어치가 있다. 신의손의 것으로 영원히 끝날 줄 알았던 최고령 출전 기록은 이제 김병지라는 이름 뒤에 영원불멸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김병지 다음으로 최고령 현역 선수였던 만 43세의 최은성은 지난 7월 전북에서 은퇴를 했다. 현재 김병지 다음으로 최고령인 77년생 김남일이 이 기록을 깨려면 현역 선수로 7년을 더 뛰어야 한다. 이동국, 박동혁, 김은중 등 79년생 선수들도 그 이상을 뛰어야 한다. 필드 플레이어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다. 골키퍼 중에서도 이 기록에 도전할만한 선수는 현재 보이지 않는다.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기에 따라 특별할 수 있었던 기록은 소리 소문 없이 묻힌 채 시간이 흐를 뻔 했다. 김병지는 자신이 대기록을 세웠음을 기뻐하면서도 씁쓸한 한 마디를 남겼다.
“기록은 선수 혼자서 달성하는 것이 아니다. 팬들이, 언론이, 구단이, 연맹이 모두 함께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선수는 그들의 관심과 응원 속에서 한계에 도전하는 존재고 그 힘이 커질 때 한계를 돌파할 수 있다.”
무관심 속에서 달성해 낸 위대한 기록. 그는 올해도 리그 전 경기에 출전했다. 육체의 한계도, 정신의 한계도 극복해냈지만 김병지는 외로웠다. 그 사실이 너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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