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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9일 토요일

역사상 최고의 드리블러 TOP10, 메시 2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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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린샤, 호나우지뉴, 호날두 그리고 메시까지. 환상적인 개인기술로 축구 팬들을 사로잡는 드리블러. 과연 축구 역사상 최고의 드리블러는 누구일까?

이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영국 축구 전문 매체 ‘커트오프사이드’는 29일 ‘축구 역사상 최고의 드리블러 베스트10’이라는 제목으로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드리블러 10명을 소개했다.

영광의 1위는 아르헨티나의 전설 디에고 마라도나다. 축구황제 펠레의 영원한 라이벌이며 축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 장면에는 대부분 마라도나가 있을 정도로 환상적인 선수였다. 특히 월드컵에서 활약이 좋았고, 혼자의 힘으로 1986년 월드컵을 우승시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절대적인 존재감을 과시했다.

2위는 마라도나의 진정한 후계자 리오넬 메시다. 아직 현역 선수지만 충분히 축구 역사에 남을만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진정한 기록 파괴자이자, 위대한 테크니션이다. 알고도 못 막는다. 아주 화려하지는 않지만 간결하면서도 속도감 넘치는 드리블로 상대의 타이밍을 뺏고, 방향 전환과 공간을 이해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난 선수다. 이미 마라도나의 버금가는 골 장면들을 만들고 있고, 환상적인 드리블로 최고의 장면을 만들었다.

3위는 브라질 최고의 드리블러 가린샤다. 그는 축구 역사상 최고의 테크니션으로 불리고 있고,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보다 짧은 신체적 결함을 극복하고 이것을 장점으로 만들어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4위는 크루이프턴의 창시자 요한 크루이프다. 그는 네덜란드의 전설적인 선수이자, 바르셀로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최고의 미드필더다. 그는 경기장 어느 곳에서든 플레이를 할 수 있는 미드필더였고, 어느 순간에도 최고의 모습을 보였다. 전술적인 면에서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선수고, 기술적으로도 가장 완벽했던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5위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 조지 베스트다. 맨유 ‘No.7’ 계보의 시작을 알렸던 인물로 천재적인 축구 선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고, 최고의 테크니션이었다. 6위와 7위는 두 명의 축구황제다. 6위는 펠레가, 7위는 호나우두가 이름을 올렸다. 두 선수 모두 월드컵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쳤고 우승컵을 들어 올렸던 전설적인 선수들이다.

8위는 아트사커의 대명사, 지네딘 지단이다. 지단은 축구 역사상 가장 완벽했던 플레이메이커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것은 물론 축구를 가장 잘 이해하고 탁월한 축구 지능과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

9위는 외계인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호나우지뉴다. 축구 역사상 가장 화려한 개인기술을 가지고 있어 축구 팬들로부터 외계인이라 불렸고, 기술과 드리블만큼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었다. 마지막 10위는 잉글랜드의 전설이자, 초대 발롱도르의 주인공 스탠리 매튜스다.


2014년 8월 27일 수요일

‘첫 태극마크’ 한교원 “아는 선수가 동국이 형 밖에 없네요”

“처음에는 정말 멍했죠. 아직도 믿어지지 않네요.”

한교원(24·전북)의 목소리는 떨렸다. 국가대표 얘기를 꺼내자 벅찬 감정을 억누르려는 듯한 기운이 느껴졌다.

한교원은 지난 25일 대한축구협회가 발표한 9월 A매치(5일 베네수엘라·8일 우루과이)에 출전할 22명의 대표팀 명단에 포함됐다. 생전 처음 태극마크를 달게 된 순간이었다. 이름 좀 알려진 프로 선수치고 연령대별 국가대표 경력이 없는 선수가 거의 없을 정도인데, 그간 한교원에게 태극마크는 ‘남의 일’이었다. 음지에 있었던 그의 축구 인생에 강렬한 햇살이 비쳤다.

한교원은 27일 스포츠경향과의 통화에서 “전혀 기대도 안 했는데 뽑혀서 정말 멍했다. 실감이 안 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올 시즌, 특히 월드컵 휴식기 이후 그의 활약은 단연 돋보였다. K리그 클래식 22경기에서 7골·3도움을 기록 중인 한교원은 월드컵 휴식기 이후인 지난 7월부터 열린 리그 10경기에서 5골·3도움을 올렸다. 많은 전문가들은 “기량이 확실히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고, 플레이에 눈을 떴다”고 그를 평가하고 있다.

한교원은 “사실 시즌 초반에는 이적 후 적응도 해야 했고, 좋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에 마음만 앞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이 컸다”고 고백했다. 한교원은 인천에서 지난 3시즌 동안 빠른 발을 이용한 침투와 공격 전방위에서 활발히 움직이는 활동량을 앞세워 인상적인 경기력을 보였다. 최강희 전북 감독은 한교원의 발전 가능성을 높이 사면서 적지 않은 이적료를 주고 그를 영입했다.

최 감독의 신뢰 속에 측면 공격수로 계속 기용됐지만, 전반기에는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의 말대로 이적 후 심적인 부담감이 크게 작용했다. 정교하기보다는 투박하지만 빠르고 거침없는 돌파를 주무기로 하는 장점이 자신감을 잃으면서 오히려 독이 됐다.

그런데 월드컵 휴식기가 보약이 됐다. 한교원은 자신의 플레이를 세심하게 비디오로 분석했다. 최 감독의 지적을 듣고 약점 보완에 몰두했다. 빠르게 돌파하지만 크로스와 슈팅 타이밍이 좋지 않았던 한교원은 ‘생각하는 플레이’를 하고 마지막 집중력을 쌓는 데 주력했다. 그는 “훈련량을 높여 마지막 마무리와 타이밍 싸움의 노하우를 터득하는 데 힘썼다”고 말했다.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같던 한교원은 플레이에 세밀함을 입혔다.

철저한 분석의 효과는 만점이었다. 돌파와 슈팅 타이밍을 잡기 시작하면서 골을 계속 터뜨렸다. 특유의 폭발적인 침투에 이은 크로스도 살아나며 어시스트 능력까지 보였다. 시즌 중인데 이미 자신의 종전 시즌 최고 기록(6골·2도움)을 돌파했다. 한교원은 수비 가담도 적극적으로 하며 팀 플레이에도 녹아들고 있다.

‘대선배’ 이동국(35·전북)과 함께 9월 A매치에 나가게 된 그는 “대표 선수 중에 동국이 형 말고는 아는 선수가 한 명도 없다”고 웃으면서 “동국이 형만 졸졸 따라다니며 ‘전우조’로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 “첫 대표팀 생활이니 하나라도 더 배우는 것은 기본이고 후회없이 장점을 보여주고 오겠다”고도 했다.

같은 포지션의 해외파 이청용(볼턴)과의 경쟁에 대해 묻자 “TV에서만 보던 선수인데…”라면서 “국가대표가 됐으니 앞으로도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더 발전하는 선수가 되겠다”고 짧고 굵게 답했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러닝맨’ 한교원이 태극마크를 달고 더 높은 도전을 시작한다.